신용회복경험담
나를 다시 살게 한 두 글자, '회생'이라는 희망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8.04 13:54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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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입부: 채무 발생 전의 일상적인 삶
저는 39살의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병원 행정직으로 일하며 중학생인 딸아이와 단둘이 살아가고 있어요. 이혼 후 경제적으로는 빠듯했지만, 아이만 바라보며 꿋꿋이 버텨왔습니다. 월급날이면 생활비와 학원비, 보험료를 빠르게 정리하고 나면 손에 남는 돈은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제 삶은 안정적이라고 믿었습니다.

2. 전개: 채무 발생과 악화 과정
그런 저에게 기회처럼 다가온 게 바로 '재테크'였습니다. 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투자처는 마치 현실판 로또 같았어요. 처음엔 100만 원, 200만 원씩 넣으면 한 달 만에 수익이 붙어 들어오더군요. 신뢰가 생기자 점점 투자 금액을 늘렸고, 결국 대출까지 받게 됐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모든 연락이 끊겼습니다. 계좌는 폐쇄되고, 사람도 사라졌죠. 당황해 정신없이 수습하려던 찰나, 이번엔 보이스피싱이 들이닥쳤습니다. 대출 승인 연락을 가장한 전화였는데, 순식간에 수백만 원이 빠져나갔습니다. 그렇게 1년 반 사이, 저축은행과 대부업체에 진 빚이 9,200만 원.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 되어버렸습니다.

3. 위기: 개인회생 결심까지의 상황
밤잠을 이루지 못한 날이 몇 달을 갔습니다. 월급 대부분은 이자에 묶였고, 아이 간식 하나 마음 편히 사줄 수 없는 현실에 제 자존감은 바닥을 쳤습니다. 극단적인 생각도 했어요. 이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유혹이 매일같이 들었죠.
결정적인 계기는 딸아이의 생일이었습니다. 케이크 하나 사주지 못하고 눈물로 밤을 보낸 그날,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인터넷에서 ‘개인회생’이라는 제도를 알게 되었고, 상담을 받기로 결심하기까지는 한 달 정도 고민했어요. 주변엔 말도 못 했죠. 부끄럽고, 죄스러웠습니다. 처음 상담을 받으러 갔을 때는 두려움에 손이 떨릴 정도였어요. '정말 이걸로 내 인생이 달라질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컸습니다.

4. 해결: 개인회생 진행 과정
상담을 시작한 후 서류를 모으고 법원에 접수까지 걸린 시간은 약 2개월 정도였습니다. 그 이후 개인회생 인가가 나기까지는 총 4개월 정도 걸렸어요. 긴 기다림이었지만, 그동안 서류 준비와 소득증빙, 생활기록 정리 등을 꼼꼼히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법원에 출석하는 날, 마치 재판을 받는 죄인처럼 느껴졌지만 정작 판사님은 차분하고 객관적인 태도로 제 상황을 이해하려 하셨어요. 무섭기보단 '사회가 나를 아직 버리지 않았구나' 하는 위안이 들었습니다.
변제계획은 월 35만 원씩 3년간(총 36개월) 변제하는 것으로 인가받았습니다. 물론 빠듯한 건 여전하지만, 이제는 이자에 쫓기지 않고 정해진 금액만 성실히 내면 된다는 것이 큰 위안이었습니다. 힘들 땐 혼자 삭이지 않고 아이와 산책하며 마음을 다잡았어요. "엄마, 괜찮아. 우리 같이 이겨내자." 딸아이의 이 한마디가 제 삶의 버팀목이었습니다.

5. 결말: 현재의 변화와 희망
개인회생 인가가 난 지 1년이 조금 지났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연체 없이 성실히 갚고 있어요. 생활비는 여전히 빠듯하지만, 예전처럼 이자에 허덕이지 않아 숨이 트입니다. 가장 큰 변화는 ‘내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에요.
앞으로는 무리한 투자나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흔들리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작은 적금부터 다시 시작하며, 아이의 대학 입학을 준비하는 게 지금 제 목표입니다.
혹시 이 글을 보시는 분 중에 저처럼 절망 속에 계신 분이 있다면, 꼭 말해드리고 싶어요. 개인회생은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제도라고요. 도움을 구하는 게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혼자 끙끙 앓지 마시고, 꼭 상담을 받아보세요. 저처럼 다시 삶의 희망을 찾으실 수 있을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