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회복경험담
빚으로 무너진 삶, 다시 밭에서 희망을 심다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7.29 17:28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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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입부: 채무 발생 전의 일상적인 삶 (약 15%)
전에는 소박하지만 나름 만족스러운 삶이었습니다. 남편과 함께 충북의 작은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고, 두 아이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도시에 나가 지내고 있었습니다. 생활은 빠듯했지만, 계절 따라 밭일하며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면 먹고살 수 있었습니다. 이웃들과 김장을 나누고, 마을회관에서 다 같이 텔레비전을 보며 웃던 시절이 그립네요. 그러다 인생의 큰 굴곡이 찾아왔습니다. 바로 이혼이었습니다.

2. 전개: 채무 발생과 악화 과정 (약 25%)
결혼생활은 오래됐지만, 갈등이 쌓이고 말 한마디가 상처가 되더니 결국 이혼이라는 결정을 하게 됐습니다. 자녀들은 모두 성인이었고, 양육권 문제는 없었지만, 문제는 재산 분할과 위자료였습니다. 저희가 가진 재산이라고 해봐야 밭 몇 마지기, 오래된 집 한 채뿐이었지만, 남편은 끝까지 자기 몫을 챙기려 했고 결국 법적 절차까지 가게 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변호사비와 정산금 마련을 위해 은행 두 곳에서 대출을 받았고, 생활비는 카드 돌려막기로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갚겠지 싶었지만, 수입은 제자리였고 채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어느덧 7,800만 원이라는 금액이 되어 있었습니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사람에겐 감당할 수 없는 액수였습니다.

3. 위기: 개인회생 결심까지의 상황 (약 20%)
정작 가장 큰 위기는 대출금 이자조차 연체되기 시작했을 때였습니다. 전화는 하루에도 몇 통씩 오고, 무서워서 모르는 번호는 아예 받지도 못했어요. 밭일을 하다가도 마음이 가라앉고, 밤에 자려고 누우면 '이자가 또 얼마나 붙었을까' 하는 생각에 눈을 감을 수가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마음이 무너졌던 건, 도시에서 잘 지내는 줄만 알았던 아들이 "엄마, 카드값 때문에 고생하는 거 아냐?" 하고 전화를 해왔을 때였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스스로를 자책하며 고민만 하다 결국 읍내 상담소를 찾아갔습니다. 상담받는 자리에서 손이 덜덜 떨렸어요. “정말 내가 개인회생이라는 걸 해야 할 만큼 망가진 걸까?”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상담사 분이 조용히 제 말을 들어주시며, “충분히 회복할 수 있다”고 말해주셨을 때 처음으로 숨이 쉬어졌습니다.

4. 해결: 개인회생 진행 과정 (약 25%)
상담 후 서류를 준비하고 법원에 신청서를 넣기까지 한 달 반 정도 걸렸습니다. 제출 서류가 많고 절차가 복잡했지만, 안내를 따라 하나씩 진행했습니다. 법원 출석도 했고, 제 상황을 설명해야 할 때는 정말 떨렸지만, 진심을 담아 이야기했습니다.
다행히 인가가 내려졌고, 저는 매달 23만 원씩 3년간 갚는 변제 계획을 승인받았습니다. 그 순간, 세상이 조금은 다시 밝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쉽지는 않았습니다. 감자, 고추, 들깨 농사로 버는 돈에서 그걸 떼고 나면 생활비가 빠듯했지만, 시장에 물건을 직접 내다 팔고, 마을 부녀회 일도 도우며 근근이 채워나갔습니다.

5. 결말: 현재의 변화와 희망 (약 15%)
지금은 개인회생 2년 차에 접어들었습니다. 아직 1년 남았지만, 마음은 한결 가볍습니다. 더 이상 빚 독촉 전화에 떨지 않고, 계획된 변제를 꾸준히 해나가고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자식들에게 “엄마 잘 지내고 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겼다는 게 큽니다.
앞으로는 작은 텃밭 체험 프로그램도 열어보고 싶습니다. 도시 사람들에게 농촌의 여유를 전해주는 일을 하며, 다시 삶을 일구고 싶습니다. 저처럼 이혼 후 경제적으로 힘든 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어요. 혼자 끙끙 앓지 마시고, 꼭 도움을 청하세요.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 용기가,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