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회복경험담

2025.08.08 17:13

아이들의 꿈을 위해 시작한 일이었어요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8.08 17:13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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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꿈을 위해 시작한 일이었어요

결혼 후에도 저는 계속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해 왔어요. 바쁜 근무 속에서도 남편과 함께 두 아이를 키우며 나름 알뜰하게 살았죠. 첫째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아이의 영어 실력이 조금씩 두각을 나타내면서 자연스레 ‘조기 유학’ 이야기가 나왔어요. 저희 부부는 고민 끝에, 큰아이를 영어권 국가에 1년 정도 유학 보내보자고 결정했죠. 아직 어려서 혼자 보내긴 힘들었고, 남편이 일정 기간 동반 체류하며 뒷바라지를 하기로 했어요.




 

예상보다 훨씬 컸던 유학의 무게

그 선택이 이렇게 큰 부담으로 돌아올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초기에는 항공료, 체류비, 학비 등 예상 가능한 비용만 계산했는데, 막상 현지에 나가보니 생각보다 지출이 컸어요. 게다가 환율이 급등하면서 매달 보내는 돈도 늘어났고요. 처음 2천만 원 정도였던 대출이 1년 사이에 5천만 원까지 늘었고, 이후 둘째 아이 교육비와 생활비를 카드로 돌리다 보니 어느새 채무가 8천만 원까지 쌓였습니다. 은행 대출 두 건, 카드론과 리볼빙까지… 점점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어요.




 

결국 무너졌습니다

매달 갚아야 할 이자만으로도 숨이 막혔고, 원금은 그대로였어요. 처음에는 '조금만 더 버티자', '추가근무 해서 갚자'며 1년 넘게 버텼지만, 이젠 아이들 학원비도 밀리기 시작했고, 집에서도 제가 예민해지다 보니 가족 분위기도 엉망이었죠. 결정적인 계기는 급성 스트레스로 병원에서 쓰러졌던 날이었어요. 수액을 맞으며 누워 있는데, 문득 '이러다 정말 다 잃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날 이후 저는 진지하게 개인회생을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수치스럽고 두려웠어요. "애들 유학 보낸 게 죄인가?" 싶기도 했고요. 하지만 동료 간호사 한 분이 조심스럽게 “그런 제도도 있으니 상담이라도 받아보라”고 조언해 주셨어요.




 

상담부터 인가까지… 다시 살아가는 과정

상담을 받고 마음이 조금 놓였어요. 생각보다 절차가 체계적이고, 저 같은 워킹맘도 많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죠. 준비 서류만 해도 꽤 많았지만, 야간에도 시간을 쪼개며 틈틈이 챙겼어요. 접수부터 인가 결정까지 약 6개월 정도 걸렸고, 저는 3년간 매달 약 45만 원씩 상환하는 조건으로 인가를 받았어요.

제일 힘들었던 건 아이들 앞에서 웃는 일이었어요. “왜 엄마는 계속 일해?” 묻는 아이들에게 “우리 여행 가자”며 뻔뻔하게 웃던 날, 마음속으론 울었죠. 그래도 변제 기간 중에도 정직하게 일하며 조금씩 빚을 갚아간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되었어요. 법원에 출석했을 때는 떨렸지만, “성실하게 살아온 흔적이 보인다”는 판사의 말에 눈물이 핑 돌았던 기억이 납니다.




 

조금씩, 하지만 확실하게 달라지고 있어요

지금은 변제 2년 차예요. 매달 꼬박꼬박 상환하고 있고, 가족도 점점 안정을 찾아가고 있어요. 큰아이는 지금 한국에서 국제학교에 다니며 다시 미래를 준비하고 있고, 저도 더 이상 과한 욕심은 부리지 않아요.

무엇보다 달라진 건 제 마음이에요. 더 이상 숨기지 않아요. 남편과도 솔직하게 재정 이야기를 하고, 아이들 앞에서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도 어쩌면 저처럼 ‘가족을 위해’ 빚을 졌다가 무너진 분이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잘못된 게 아닙니다. 다만, 방법을 몰랐을 뿐이고, ‘회복’이라는 길은 분명히 있습니다. 제 이야기가 작은 용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지금도 저는 병동에서 환자들을 돌보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있어요. 언젠가 다 갚고, 진짜 자유를 찾는 그날까지 저는 계속 걸어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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