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회복경험담

2025.07.29 17:07

자식 교육을 위해 걸었던 길, 이제는 내 삶을 되찾고 싶습니다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7.29 17:07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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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입부: 채무 발생 전의 일상적인 삶

퇴직 전 저는 한 중견기업에서 30년 가까이 근무한 직장인이었습니다. 매달 성실히 급여를 받고, 아내와 세 자녀를 돌보며 살아가는 평범한 가장이었죠. 큰 욕심 없이, 자식들만 잘되면 된다는 생각으로 살았습니다. 막내가 대학에 들어갈 즈음, 첫째와 둘째가 해외 유학을 가겠다고 했을 때도, "해줄 수 있을 때 해주자"는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제 퇴직금과 적금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2. 전개: 채무 발생과 악화 과정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첫째는 미국에서, 둘째는 호주에서 유학하며 들어가는 학비와 생활비가 생각보다 훨씬 컸습니다. 환율은 계속 올랐고, 예기치 못한 비용도 계속 생겼습니다. 결국 퇴직금은 금방 바닥이 났고, 부족한 부분을 카드론과 은행 대출로 메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2~3천만 원일 땐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이자가 붙고, 또다시 빌리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8천만 원 가까운 빚이 쌓였습니다. 경비원으로 새로 일자리를 구해 매달 160만 원 남짓 벌고 있지만, 이자 갚고 나면 손에 쥐는 돈은 거의 없었죠. 아내는 생활비 때문에 속이 타들어갔고, 저는 점점 집안에서 말수가 줄어들었습니다.



 

3. 위기: 개인회생 결심까지의 상황

결정적인 계기는 두 번째 카드 연체였습니다. 그날 아침, 카드사에서 온 독촉 전화를 받고 아내가 저를 말없이 바라보는데, 그 눈빛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당신 혼자 짊어질 일이 아닌데, 왜 이제야 말해?" 아내 말에 눈물이 나더군요. 그날 저녁, 처음으로 가족들에게 모든 빚 상황을 털어놨습니다.

그 후 몇 주 동안 고민했습니다. 체면도 있었고, 나이 들어서 이런 제도를 이용한다는 게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자식들에게 부담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마지막으로 제 삶을 되찾기 위해 결단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인의 소개로 무료 상담을 받게 되었고, 상담사 앞에서 제 상황을 말하면서 처음으로 숨을 제대로 쉬는 기분이었습니다.




 

4. 해결: 개인회생 진행 과정

상담 후 서류를 준비하고 법원에 접수하기까지 약 한 달이 걸렸고, 인가 결정이 내려오기까지는 총 3개월 정도 걸렸습니다. 법원에 출석했을 때, 처음에는 떨렸지만 담당 판사님이 진지하게 제 사정을 들어주시고 긍정적으로 판단해주셔서 감사했던 기억이 납니다.

인가 후 확정된 변제계획은 월 28만 원씩 3년간 갚는 조건이었습니다. 경비원 월급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 다행이었죠. 물론 여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전처럼 이자에 쫓기며 사는 삶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생계비와 변제금을 맞추는 게 쉽지 않았지만, 아내와 함께 가계부를 철저히 쓰며 버텼습니다. 자녀들도 생활비 일부를 보태주기 시작했고, 가족이 서로에게 조금 더 솔직해지고 가까워졌습니다.



 

5. 결말: 현재의 변화와 희망

이제 개인회생 1년이 지나, 남은 기간은 2년 남짓입니다. 여전히 경비원으로 일하며 새벽마다 아파트 단지를 돌지만, 예전처럼 한숨만 쉬던 날은 없습니다. 매달 착실히 갚아나가며, 남은 인생은 조금이라도 가볍게 살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가장으로서 자녀 교육을 위해 빚을 진 것은 후회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무게를 혼자 지려고 했던 건 어리석은 선택이었습니다. 같은 처지의 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개인회생은 포기가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방법입니다.

지금 당신의 삶도, 다시 숨 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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