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회복경험담

2025.08.01 17:45

자식 잘 되라고 했던 선택, 결국 내 인생을 되돌아보게 했습니다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8.01 17:45 인기
  • 132
    0

도입부: 평범했던 삶과 가족 중심의 일상 (약 15%)

젊을 땐 쉬지 않고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하루 열두 시간, 주말 반납은 기본이었죠. 그렇게 일하면서도 마음이 든든했던 건 두 자식이 열심히 공부해주는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제 아내와 저는 교육만큼은 아끼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그 약속은 꽤 오랜 시간 지켜졌습니다. 막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유학 얘기가 처음 나왔습니다. 부모로서 고민은 됐지만, “기회는 줄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에 결국 허락했고, 유학비와 체재비 대부분을 대출로 충당하게 되었습니다.




 

전개: 채무의 시작과 점점 무거워진 짐 (약 25%)

해외 학비는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첫 해는 저축으로 어느 정도 해결했지만, 2년 차부터는 은행에서 학자금 명목의 신용대출을 받고, 생활비는 카드로 돌리기 시작했죠. 처음 3천만 원 정도였던 빚은 매달 이자가 붙고 카드 값이 쌓이며 8천만 원까지 불어났습니다. 아이가 졸업하고 취업하면 어느 정도 정리되겠지 생각했지만, 졸업 후에도 정규직 취업은 쉽지 않았고, 도움을 받기보단 계속 보내주는 형국이 됐습니다. 그 무렵 저는 공장에서 퇴직했고, 현재는 소형 창고에서 일용직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수입은 많아야 월 120만 원 정도. 빚 독촉 전화가 하루에도 몇 통씩 오고, 잠을 설치는 날이 늘어갔습니다.




 

위기: 결심과 망설임의 시간 (약 20%)

정말 망설였습니다. 평생 신용 하나로 살았는데, 개인회생이란 말은 제게 너무 낯설고 무거웠습니다. 가족에게 말도 못하고 혼자 끙끙 앓으며 반년 가까이 고민했죠. 결정적인 계기는 카드사에서 ‘법적 절차’라는 말이 담긴 우편을 받은 날이었습니다. 그날 밤, 아내에게 처음 상황을 털어놨고, 그제야 “왜 혼자 버텼느냐”며 함께 울었습니다. 가까운 지인의 소개로 상담을 받으러 갔는데, 문 앞에 서는 순간까지 발걸음이 안 떨어졌던 게 기억납니다. 막상 상담을 받고 나니, ‘이 길밖에 없겠구나’ 싶었고, 그제서야 마음이 조금 놓였습니다.




 

해결: 개인회생 진행과 그 과정 (약 25%)

상담부터 법원 인가 결정까지는 약 4개월 정도 걸렸습니다. 서류 준비도 많고, 특히 소득 증빙이 어려워 자꾸 보완 요청이 들어왔지만, 담담히 하나씩 해결했습니다. 저는 월 12만 원씩 3년간 갚는 계획으로 인가를 받았습니다. 처음 법원에 출석하던 날은 손이 덜덜 떨렸습니다. “내가 정말 여기까지 왔구나” 싶더군요. 하지만 판사님의 설명을 듣고, 다른 사람들의 사례도 들으면서 조금씩 안정을 되찾았고, ‘이제 진짜 다시 시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족들의 응원이 가장 큰 힘이었습니다. 아내는 집안 살림을 줄이고, 자식들도 자신들이 벌기 시작하면서는 용돈 대신 부모의 고생을 덜어주려고 애썼습니다. 그렇게 모두가 함께 이 과정을 버텨줬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결말: 회복 중인 삶과 조심스럽게 그리는 미래 (약 15%)

이제 개인회생이 시작된 지 1년 반 정도가 지났습니다. 매달 변제금은 빠짐없이 내고 있고, 채무 독촉에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입니다. 전처럼 외식이나 여행은 못 하지만, 마음의 여유는 조금씩 생기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아내와 제주도라도 다녀오는 게 작은 소망입니다.

같은 처지에 있는 분들께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혼자 끌어안고 버티지 마세요. 회생은 포기가 아니라 다시 살기 위한 ‘선택’입니다. 저도 늦게나마 용기 내어 선택했고, 덕분에 하루하루를 견딜 수 있게 됐습니다. 마음이 무너져도 삶은 계속됩니다. 그걸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 공유링크 복사
3dc013156a09ad0d63c84632f70c2789_1754277408_9571.png